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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五峰山 ]

요약강원도 춘천시 북산면과 화천군 간동면에 있는 산.

높이 779m

   

문화재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 청평사(강원기념물 55), 청평사 삼층석탑(강원문화재자료 8)

   

위치

강원 춘천시 북산면, 화천군 간동면 지도

 

높이는 779m, 소양강댐 건너 청평사 뒤에 솟은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의 다섯 봉우리를 말한다. 옛 이름은 경운산이었고 오봉산, 경수산, 청평산으로도 부르다 등산객에게 알려지면서 오봉산이 되었다.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철도산행지,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반산행지로 알려져 있다.

 

1,000년이 넘은 고찰 청평사(강원기념물 55),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 구송폭포(九松瀑布), 중국 원() 순제의 공주와 상삿뱀의 전설이 얽힌 삼층석탑(공주탑:강원문화재자료 8), 공주굴, 공주탕, 연못의 시조라는 영지(남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등산은 배후령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구송폭포로 하산하는 4km, 2시간 걸리는 코스와 배후령에서 시작해 정상에서 청평사를 지나 구송폭포로 하산하는 6km, 3시간 걸리는 코스, 배후령에서 시작해 정상에 오른 뒤 부용계곡으로 하산하는 7km, 3시간 30분 걸리는 코스,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청평사 선착장에서 시작해 구송폭포, 청평사를 지나 정상에 오른 뒤 청평사로 내려와 선착장으로 하산하는 7km, 3시간 30분 걸리는 코스 등이 있다.

 

대중교통편은 춘천-배후령행 시외버스를 타거나, 춘천 시내에서 소양강댐이나 배후령으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탄다.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면 청평사까지 20분 걸린다. 승용차로 찾아가려면 46번 국도로 청평, 가평, 춘천시를 거쳐 배후령까지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봉산 [五峰山] (두산백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오봉산이 아닌 청평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풍속이 순후하고 아름답다라고 하고, 이첨이 말 들으니 춘천은 산과 물의 동굴, 백성들의 집은 조밀하고 바람 소리 많다네라고 노래한 춘천시에서 화천으로 가는 배후령 부근에 청평산(淸平山)이 있다.

 

여암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 따르면 청평산은 백두대간이 금강산에서 설악산으로 내려오다 향로봉 쪽으로 뻗어내려 양구의 사명산을 세우고 소양강과 화천강이 한 몸이 되어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들목에 있는 산이다. 1970년대에 이 고장의 산악인들이 산에 다섯 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다고 하여 오봉산(五峯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어떤 지도나 문헌들을 다 찾아보아도 모두 청평산이라고 나온다. 동국여지지도, 대동여지전도,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산경표를 비롯하여 작자가 불분명한 여러 지도들에도 청평산으로 기록되어 있다. 단 하나, 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에는 청평산이란 이름 외에 경운산(慶韻山)으로도 부른다고 하였다.

 

청평산은 경운산이라고도 한다. 양구현 사명산(四明山)에서 뻗어 나와 용화산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 관아에서 북쪽으로 40리 떨어져 있다. 고려 때 이자현이 이 산으로 들어와서 문수원을 짓고 살았다. 더욱이 참선을 좋아하여 동굴 속 외딴 곳에 고니 알처럼 둥글둥글하게 식암(息菴)을 지었는데, 겨우 두 무릎을 틀고 앉을 만하였다. 그 안에 묵묵히 앉아서 몇 달 동안 나오지 않았다.”

그와 같은 해에 과거 급제한 곽여가 사신이 되어 강원도로 왔다가 방문해 시를 지어 남겼다.

 

 

청평산 경치는 상수(湘水)의 물가와 같구나

오래도록 헤어졌던 옛사람 다시 만났네

삼십 년 전 함께 과거에 급제했는데

천리 밖에 떨어져 각각 사는 몸이라네

뜬구름처럼 골짜기에 들어와 세상 일이 없었고

밝은 달 시냇물을 비추니 티끌에 물들지 않았네

바라만 보며 말없이 오래도록 있으니

욕심 없던 옛 마음이 서로 비치네

 

이 시를 받은 이자현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산골짜기 훈훈한 기운 가득 어느새 봄으로 바뀌고

뜻밖에 높은 관리께서 숨어 사는 사람 찾아주셨네

백이와 숙제, 세상 피한 건 오직 성품을 보전하려 함이었고

직과 설, 나라 일에 부지런한 건 제 몸 위해서가 아니었지

왕명을 받들고 온 이때 옥으로 된 장식이 짤랑거리네

벼슬 그만두고 옷에 묻은 티끌을 떨쳐버릴 날 언제일까

어찌 이 땅에서 함께 숨어 살아야만 하겠는가

종래 지니던 변함없는 마음 기르면 그만인 것을

 

이런 사연을 지닌 청평사는 소양강댐 북쪽에 솟은 오봉산(청평산) 자락의 남쪽에 있다.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고려 광종 24(973) 승현선사가 개창하면서 백암선원(白巖禪院)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산선문이 한창이던 시절 참선 도량이었을 이 절은 그 뒤 폐사되었다가 고려 문종 22(1068)에 춘천도감찰사로 있던 이개가 경운산의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여 폐사지에 절을 지어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뒷날 이개의 장남 이자현이 선종 9(1089)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와 은거하자 산에 들끓던 호랑이와 이리 떼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산 이름을 맑게 평정되었다는 뜻의 청평산이라 하고, 절 이름도 이자현이 두 번이나 친견하였다는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 문수원이라 하였다. 이자현은 전각과 견성(見性), 양신(養神) 등 여러 암자를 만들며 청평산 골짜기 전체를 포괄하는 고려식 정원을 만들었다. 원나라의 태정왕후는 성징윤견 등이 바친 경전을 이 절에 보냈고, 공민왕 16년에는 고승 나옹화상이 머물렀으며, 조선 세조 때는 매월당 김시습이 청평사에 서향원(瑞香院)을 짓고 은둔하였다.

 

아침 해 돋으려 새벽빛이 갈라지니

숲 안개 개는 곳에 새들이 벗 부르네

먼 산 푸른빛 창을 열고 바라보니

이웃 절 종소리 산 너머 은은하네

 

김시습이 노래한 것처럼 적막하면서도 은은한 절 청평사는 세월이 훌쩍 지난 뒤인 조선 명종 5(1550)에 승려 보우가 개창하였다. 그러나 나라 안의 대다수 절들처럼 한국전쟁 때 구광전과 사성전 그리고 국보로 지정되었던 극락전이 소실되었고 남은 기단 위에 대웅전을 세웠는데, 그나마 무지개처럼 휘게 만든 계단의 귓돌(우석) 끝부분이 남아 있어 옛날의 정교하고 우아했던 조각 솜씨를 자랑한다. 남은 건물로는 보물 제165호로 지정된 청평사 회전문과 극락보전 및 불각이 있으며, 조금 떨어진 곳에 요사채가 있을 뿐이다. 한편 절터에 남은 회랑과 여러 문의 초석을 통하여 옛날 청평사의 전성기를 그려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절들 중에서 청평사에서만 볼 수 있는 회전문은 일주문이 없는 청평사 앞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본래는 천왕문의 기능을 담당했을 회전문은 조선 명종 때 보우가 중건하였다. 회전문이라는 이름에서 현대인들은 큰 빌딩의 빙글빙글 도는 문을 연상하겠지만, 청평사의 회전문은 윤회의 의미를 깨닫게 하고자 만든 마음의 문이다. 만물은 가고 다시 오며, 이승과 저승의 생과 사는 그렇게 거듭될 것이다.

세월교 

신북읍 천전리와 동면 월곡리를 잇는 다리로 소양강댐 하류에 있다. 교각의 원형 물 통로가 콧구멍을 닮았다고 하여 콧구멍다리라고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봉산이 아닌 청평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8 : 강원도, 2012. 10. 5., 다음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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